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트마어 크라머 (문단 편집) === 대한민국 U-23 총감독 및 기술고문 === [[파일:external/www.kfa.or.kr/201592191910.jpg]] 1991년, 크라머는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 총감독 및 기술고문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대한민국 축구협회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의 전력을 강화시키길 원했고 아시아를 돌며 축구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던 그를 주목했다. 하지만 그는 곧 코칭스태프와의 갈등에 직면했다. 당시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었던[* 크라머가 총감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수석코치 포지션이었다.] 김삼락은 크라머의 훈련 방식에 불만을 제기했다. 크라머 총감독은 패스를 자유롭게 보낼 것을 주문했고 조직력을 극대화시키는 훈련을 줄였지만, 김삼락 감독은 "한국 선수들은 남미 및 유럽 선수들과는 달리 기술이 떨어지니 조직력을 극도로 끌어올려야 상대할 수 있다."며 선수들이 보다 많은 시간을 훈련하고 체력을 끊임없이 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크라머는 코치들이 선수들 사생활까지 과도하게 간섭하는 것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한국 코치들은 그가 선수들을 너무 자유롭게 놔두고 있다며 불만스러워했다.[* 2004년 5월 8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몰디브 참사(축구)|몰디브에 0:0 으로 무승부를 거둔 사태]]를 계기로 한국 축구의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중점적으로 다뤘는데, 크라머가 한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의 총감독을 맡았던 시기까지 조명되었다. 이 때 크라머는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김삼락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와 [[서정원]], [[노정윤]]을 비롯한 선수들을 언급하면서 좋은 기억만을 얘기했지만 김삼락은 '''"(크라머) 그 사람은 교육자일뿐이지 전투 부대의 야전 사령관이 아니다. 그 때 어떤 선수의 체중을 재봤더니 2kg가 늘었는데, (크라머는) 가만히 놔두라고 하더라."'''면서 여전히 크라머에 대한 험담만을 늘어놓았다. 애초에 크라머가 김삼락보다 '''15살'''이나 많은데다, 커리어면에서 [[넘사벽]]도 모자랄 만큼의 차이가 있는데 저 따위 마인드였으니 두 사람이 한국팀을 이끌 때 어땠을지는 상상이 안간다.] 언론에서는 한국인 코치들을 일방적으로 두둔하고 크라머가 한국의 실정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며 비난을 퍼부었고, [[대한축구협회]] 또한 말로는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에게 별다른 지원도 주려 하지 않았다. 결국 크라머는 한국을 올림픽 본선에 바로 진출시키는 성과를 이뤘지만 코치진과의 불화를 끝내 이기지 못하고 올림픽 본선도 치르지 못한 채 중도 사퇴하고 말았다.[* 떠나는 크라머를 [[최용수]]와 [[서정원]] 등이 공항까지 배웅했는데 이것 때문에 무언의 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한국이 나를 왜 불렀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겼는데 실제 김삼락 감독 체제로 나선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본선에서는 [[허정무컵|3무]]를 기록, 조별리그 3위로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 시기 크라머의 지도 방식에 대해 많은 한국 선수들이 감명을 받은 듯한데, 특히 [[서정원]]은 그를 개인적으로 존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정원의 말에 따르면, 크라머는 대표팀 선수들 개개인을 하나하나 만나서 자신은 그들을 일개 나라의 선수들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훈련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선수들에게 용돈을 줘서 [[자연농원]] (현 에버랜드)에 가서 놀라고 했다고 한다. 또한 크라머는 서정원에게 "내가 지도하면서 이렇게 빠르게 성장한 경우는 처음이다"라고 칭찬했고 혹시 분데스리가 올 생각이 있느냐고 물은 뒤 서정원이 긍정적인 답변을 하자 자신이 책임지고 그를 분데스리가의 명문팀에 입단시켜 주겠다고 제의했다. 이에 대해 서정원이 군 문제가 걸린다고 하자 "그러면 [[김우중]] 회장(당시 축구협회 회장)에게 말하면 되냐"라며 군 문제도 해결해줄 뜻을 밝혔다. 하지만 결국 분데스리가 이적은 무산되고 말았고 서정원은 지금도 그때 분데스리가에 갔어야 했다며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크라머는 에이스로 분류된 선수들을 혹사시키는 걸 당연시하는 한국의 풍토를 맹렬하게 비판했다. 그는 서정원이 부상을 당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무리하게 A매치에 투입시키려고 하는 축구협회의 결정에 '''"전패를 하는 한이 있어도 절대 그러면 안된다"'''며 결사 반대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만으로는 한국 축구계의 악습을 개선시킬 수 없었고, 그가 물러난 뒤에도 이러한 풍조는 계속되었다. 만약 크라머 때 이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졌다면, [[이동국]] 등 많은 스타들이 지나친 혹사로 선수 생명이 단축되는 불상사를 막았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신태용]] 감독이 인터뷰에서 크라머 감독을 스승이라 불렀으며 지도 스타일도 크라머의 영향을 받아 여타 한국 감독들과는 달리 선수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